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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있는여행, 버스투어

예산으로 향하는 10월의 풍경지난달 첫사랑을 하듯
조심스레 다가온 초가을의 햇빛

느낌있는여행, 버스투어 지도

예산으로 향하는 10월의 풍경 지난달 첫사랑을 하듯 조심스레 다가온 초가을의 햇빛은 이내 성숙한 중년의 여인네마냥 늘녘의 곡식을 알알이 채워 비쳤다.

버스투어 전날, 가을로 향하는 길목을 더욱 재촉하던 비로 인해 혹여 버스투어가 취소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는데, 예산 버스투어를 떠나는 10월 11일. 정말 완연한 가을로의 비바체(vivace)이다.

오늘 코스는 충의사, 수덕사, 추사고택 그리고 사과따기 체험의 일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버스투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먼 타지에서 오기 때문에, 출발점을 항상 예산터미널과 예산역으로 택한다. 오늘은 41명의 사람들과 함께 예산군의 명소들을 찾아가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온다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건지? 휑하기만 한 버스 안에서 초조하게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다 보니 어느새 출발시간보다 30분이나 지연되어 버렸다.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우리들을 위해 문화해설사(송애순 님)는 종종 연착이 되기 때문에 양해를 바란다고 했지만, 오늘 일정은 조금 빡빡하게 진행될 것 같았다.

어쨌든 우여곡절 속에 기차가 도착했고, 버스 안에는 타지에서 온 가족단위 일행들로 버스를 가득 메웠다. 예산은 인구 약 9만 명으로 너른 들판을 중심으로 곳곳에 명소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오늘 기대되는 일정 중 하나가 사과따기 체험일 정도로, 예산의 사과는 국내 사과생산의 5위로 당도와 향이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해서 힘들었을 텐데도 같이 버스에 탄 아이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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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충의사 / 윤봉길의사 기념관, 사진2. 500년 찬란한 역사의 수덕사

지연된 일정을 재촉하듯 우리가 먼저 본 살핀 곳은, 충의사이다. 충의사는 매헌 윤봉길 의사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과 윤봉길의사 기념관이 있다. 모진 삶 속에서도 강건한 독립의지를 지켰던 윤의사 만큼이나 사당은 몹시 정갈했다. 혹여 낯선 이방인들로 그의 거룩한 애국심에 때를 묻힐까봐 걱정이 될 만큼이었다.

그의 고결한 영정 앞에 묵념을 드리며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했다. 두 번째로 도착한 곳은 배흘림기둥으로 역사 교과서에도 실린 대웅전이 있는 수덕사이다. 때마침 우리가 간 날은 700주년 기념행사 준비로 산사의 입구부터 분주함이 느껴졌다. 수덕산으로 오르는 길에 수덕여관도 둘러보았다. 우리의 민족성을 그리고 싶다던 고암 선생의 유언처럼, 수덕사 선(禪) 미술관 앞, 마당에 핀 이름 모를 꽃이 선생의 모습이 어려 있는 듯 했다.

수덕여관을 뒤로하고 조금 더 힘을 내어 산으로 올라가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니 드디어 목축건축양식의 최고봉 대웅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서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의하면, 700주년 행사 준비로 100만 종이의 국화꽃으로 대웅전과 수덕사를 꾸며놓았다고 한다. 가히 백제시대의 그 웅장함 속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백제의 뛰어난 솜씨는 이웃 일본에게 알려질 정도로, 목조건물임에도 지금까지 그 형체를 보존하고 있었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유홍준은 대웅전 하나만을 보기 위해서 열 번 찾아온다 해도 그 수고로움이 아깝지 않다고 할 정도였다.

배흘림기둥이란 말처럼 다른 건물들과 달리 아버지의 인격처럼 둥글게 휜 기둥이 왠지 모를 편안함을 줬다. 목조건물이라 꺼칠할 것 같았는데, 웬걸? 정말 여린 아이의 속살마냥 보드라웠다. 마냥 이 곳 저 곳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늦어진 일정으로 인해 둘러볼 새도 없이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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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추사김정희선생의 얼이 남은 추사고택, 사진4. 사과하면 예산, 예산사과따기 체험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을 또한번 느낀다.
점심으로 배를 둑둑히 채운 뒤, 우리가 행한 곳은 추사체로 널리 알려진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이다. 사랑채와 안채가 엄격히 구분되어 당시 유교사상을 엄격히 지켰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앞마당에는 당시 그가 실학자였음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石年”이라는 해시계가 있다. 이처럼 추사는 당시 유교사회에서도 실용적인 학문을 받아들인 실학자이며, 독특한 추사체로 명성을 날리던 서예가였다. 고택을 둘러보면 그의 다양한 서체에 평소 ‘추사체는 이거야’라고 단정 짓던 자신을 반성하게 될 것이다.

리고 마침내 보게 된 ‘세한도’는 송백 두 그루의 대칭을 통해 빈 듯하지만 꽉 찬 그야말로 여백의 미의 걸작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나 역시도 세한도의 미를 보듯 두루 살피지 못한 추사고택의 모습을 여백의 미로 남기고, 오늘 버스투어의 마지막 일정인 사과따기 체험을 위해 사과농가로 발길을 돌렸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 지쳤던 아이들 할 것 없이 부모님들도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 앞에 어린 아이처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인심 좋은 농부의 투박한 손으로 쓱쓱 문질러 준 사과를 베어 문다.

아이들과 함께 엄마아빠도 정신없이 바구니에 사과를 담으니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양손 가득 사과박스를 든다. 오랜만에 답답한 도시를 떠나 처음으로 제 손으로 사과를 따서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오늘은 지연된 일정으로 조금 무리하게 진행되었지만, 버스투어를 통해 예산군의 명소를 맛볼 수 있었다.

시간이 되면 다시금 이 길을 따라 천천히 둘러봐야겠다. 입 안에 남은 사과의 향처럼 예산으로 떠난 하루의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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