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내포보부상촌

한국의 유통문화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내포보부상촌 The korea distribution-culture bobusang village

내포이야기

    내포 지역은 역사적으로 충남의 서북부 일대를 부르는 고유명사로 사용되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지역적 범위는 다소 유동적이지만 대체로 현재의 예산, 홍성, 아산, 당진, 서산을 중심으로 태안과 보령, 서천, 청양 일부가 해당합니다. 이 지역은 서해안을 따라 발달한 바닷길을 통해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했습니다. 특히, 내륙 깊숙이 들어오는 물길을 따라 형성된 포구들은 물류 유통의 거점이 되었고, 그 주변으로는 자연스럽게 장시가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포구와 장시를 무대로 활동하는 보부상들도 크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상세내용


전시장전경3


내포는 ‘바다나 호수가 육지 안으로 휘어 들어간 부분’을 뜻합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는 충남의 서북부 지역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내포라는 지명을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포’라는 단어가 역사서에 최초로 언급된 것은 『고려사』 중 공민왕 13년 4월의 일입니다. 그 내용은 왜구 및 전라도 조운선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내포의 개념과 지역 범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가야산 주변의 열 개 고을(보령, 결성, 해미, 태안, 서산, 면천, 당진, 홍주, 덕산, 예산, 신창)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인식에 자리 잡힌 내포의 범위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전시장전경2

내포의 장시는 주로 읍치와 포구를 중심으로 발달했습니다. 내포의 읍치에는 모두 장시가 형성되었는데, 읍치는 행정 및 경제의 중심지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장시의 형성에 영향을 크게 끼쳤던 요인은 교통 조건입니다. 특히 내포는 포구가 발달한 지역으로 포구 주변으로 장시가 들어서며 상업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재화의 대부분이 육로보다는 수로를 통해 운송되었기 때문에 포구에서 이루어지는 상거래의 규모가 컸습니다.

전시장전경1


예로부터 내포 지역은 토지가 비옥하여 최고의 미곡 생산지로 권문세도가의 농장이 많았습니다. 오늘날 삽교천 일대에는 궁(宮)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은데, 당시 왕실 소유의 토지였던 궁방전이 내포 지역에 많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포 지역은 발달한 수로 교통을 통해 서울 등지로 물자를 수송하기가 쉬웠습니다. 내포 평야는 예산, 당진 지역 등에 걸쳐 펼쳐져 있는 땅으로 ‘예당 평야’라고도 합니다. 삽교천과 그 지류인 무한천과 석우천 등이 토사를 하천 연안 곳곳에 퇴적하여 넓은 충적지를 이루었습니다. 또한 일찍부터 합덕제, 예당저수지와 같은 관개 시설을 정비하여 쌀, 보리 등을 생산했습니다. 그러나 가뭄과 홍수, 바닷물의 역류 등으로 잦은 피해가 생기자 1979년 삽교천 방조제를 건설하여 농경지를 보호하였습니다.

갤러리

내포이야기2
내포이야기3
내포이야기4
내포이야기5
04 / 05
내포이야기2
내포이야기3
내포이야기4
내포이야기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