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자리한 추사고택은 조선 영조가 부마인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에게 하사한 53칸 규모의 저택으로 전해진다. 이후 추사 김정희가 월성위의 봉사손이 되면서 명실상부한 이곳의 주인이 되었다.
추사 김정희의 탄생과 성장과 관련하여 고택에는 여러 전설이 전해지며, 실제로 추사고택을 포함한 용궁리 일대에는 석각 등 그의 자취가 남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추사고택은 단순한 고향집을 넘어, 추사의 삶과 사유, 예술 세계가 집약된 ‘정신적 고향’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추사고택에는 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채가 남아 있으며, 인근에는 추사선생묘를 비롯해 월성위·화순옹주 묘와 정려문, 백송, 화암사 등 추사 김정희와 깊은 관련을 지닌 다양한 문화유적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추사고택은 문간채와 사랑채 그리고 안채, 사당채가 있다. 안채는 6칸의 대칭과 2칸의 안방, 건넌방이 있고, 안방 및 건넌방의 부엌과 안대문, 협문, 광 등을 갖춘 'ㅁ'자형의 집이다.
사랑채는 바깥 솟을 대문을 들어선 마당에 자리잡은 'ㄱ'자형 집이다. 원래 사랑채와 안채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조선시대의 가택 관념이었는데, 이는 유교적 윤리 관념에 근거한 것이다. 이사랑채는 남쪽에 한 칸, 동쪽에 두 칸의 온돌방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대청과 마루로 되어있다. 이와같이 마루공간이 큰 것은 주인공의 사회적 활동이나 예술적 활동을 하는데 요긴하게 쓰였을 것이다.
사랑채 댓돌 앞에 세워진 이 돌기둥은 해시계 받침 용도로 쓰였으며, 석년(石年)이라는 글씨는 추사선생의 아들인 상우(商佑)가 추사체로 쓴 것을 각자(刻子)한 것이다.
고택 주변에는 추사를 비롯한 가문의 묘소와 화순옹주홍문, 천연기념물 제106호인 백송 등 많은 관련 유적이 있는 곳으로 선생의 숨결과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