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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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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HISTORY

새로운 내일, 하나된 예산! 예산군이 걸어온 길입니다.

  • 1983
    02.15.

    대통령령 제11027호(1983. 2. 15. 공포)로 오가면 효림리와 월곡리 일부를 월산리로 개칭 및 좌방리 일부를 방아리로 개칭하여 삽교읍에 편입

  • 1973
    07.01.

    대통령령 제6543호(1973. 3. 12. 공포)로 삽교면이 읍으로 승격(2읍 10면)

  • 1940
    11.01.

    부령 제 221호(1940. 10. 23. 공포)로 예산면이 읍으로 승격(1읍 11면)

  • 1914
    01.01.

    부령 제 111호(1913. 12. 29. 공포)로 예산·대흥·덕산군을 통합 예산군 설치(12면)

  • 조선시대

    예산군 대흥군 덕산군으로 개칭

  • 고려시대

    예산군 대흥현 덕풍현으로 개칭

  • 신라시대

    고산현 임성군 금무현으로 개칭

  • 백제시대

    오산현 임존성 금물현으로 칭함

예산군의 연혁

본래 백제의 오산현(烏山縣)인데, 신라 제35대 경덕왕때 고산(孤山)으로 고쳐서 임성군(任城郡)[大興]의 딸린 현(縣)이 되었다가 고려 태조 2년(919)에 ′예산′으로고치었다. 제8대 현종 9년(1018)에 천안부(天安府)에 속해있다가 뒤에 감무(監務)를 두고 조선 제3대 태종 13년(1413)에 예에 따라 현감(縣監)이 되어, 현내(縣內)[군내], 금평(今坪), 술곡(述谷), 대지동(大支洞), 두촌(豆村), 입암(笠岩), 거구화(巨九火), 우가산(于可山), 오원리(五元里)의 9개면을 관할 하였는데, 제26대 고종 32년(1895)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천안군의 신종면(新宗面)을 편입1914년 군면 따라 덕산군(德山郡)의 현내(縣內), 나박소(羅朴所), 대덕산(大德山), 대조지(大鳥旨), 장촌(場村), 도용(道用), 고현내(古縣內), 외야(外也)의 11개면과 대흥군의 읍내(邑內), 근동(近東), 일남(一南), 이남(二南), 원동(遠東), 거변(居邊), 내북(內北), 외북(外北)의 8개면과 공주군 신상면(新上面)의 산북(山北), 율계(栗溪), 두지(斗支), 박운(朴雲), 백석(白石), 신천(新泉), 하천(下泉)의 5개 동리와 신창군(新昌郡), 남상면(南上面)의 등대(等大), 가적(稼積), 대소정(大召亭), 효자(孝子), 봉암(鳳岩)의 5개 동리와 면천군(沔川郡), 합북면(合北面)의 영상(令上), 영하(令下)의 2개리와 비방면(菲方面)의 돈곶리(頓串里)와 마산면(馬山面)의 대곡리(大谷里)와 홍주군(洪州郡) 남하도면(南下道面)의 구성(九城), 원성(元城), 갈오(葛五)의 3개리와 홍주면(洪州面)의 중리(中里), 치사면(稚寺面)의 치사동(稚寺등) 비지(飛地:중리)와 청양군 서상면(西上面)의 장존리(長存里), 북하면(北下面)의 하북리(下北里) 일부를 포함하여 대술, 응봉, 오가,신암, 덕산, 삽교, 고덕, 봉산, 대흥, 광시, 신양, 예산의 12개면으로 개편 관할 하였다.
1917년에 임성면(任城面)을 예산면으로 고치고, 1940년 10월 1일 읍제 실시에 의하여 예산면을 읍으로 승격해서 현재 2읍, 10면, 177동리를 관할함. 동쪽으로는 아산시와 공주시, 남쪽은 청양군, 서쪽은 홍성군과 서산시, 북쪽은 당진시와 아산시에 닿음.

대흥군의 연혁

본래 백제의 임존성(任存城) 또는 금주(今州) 신라 제35대 경덕왕이 임성군(任城郡)으로 고치었다.
고려초에 대흥(大興)으로 고치어 제8대 현종 9년(1018)에 운주(運州 홍성)에 속해있다가, 제19대 명종 2년(1170)에 감무(監務)가 되었다.
조선 제3대 태종 7년(1407)에 군으로 승격되었다가 같은 13년에 예에 따라 현감(縣監)이 되었다. 제19대 숙종 7년(1681)에 이고을 박산(朴山)에 있는 현종의 태실(胎室)을 다시 봉축하고 군으로 승격하였다가 그 후에 다시 현(縣)으로 되었다. 제26대 고종32년(1895)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군(郡)이 되어 읍내(邑內), 거변(居邊), 원동(遠東),근동(近東), 외북(外北), 내북(內北), 일남(一南), 이남(二南)의 8개면을 관할하였는데,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예산군에 편입되어 읍내, 근동의 2면을 합하여 대흥면으로일남, 이남의 2면을 합하여 광시면으로 원동, 거변의 2면을 합하여 신양면으로 내북, 외북의 2면을 합하여 봉산(응봉)면으로 되며, 오가면의 일부지역도 되었다.

덕산군의 연혁

본래 백제의 금물현(今勿縣) 신라 제35대 경덕왕이 금무(今武)로 고쳐서 이산군(伊山郡)의 관할이 되었다. 고려초에 덕풍(德豊)으로 고치고, 제8대 현종 9년(1018)에 운주(運州:홍성)에 딸리었다가 제19대 명종때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 제3대 태종 5년(1405)에 이산(伊山)-본래 백제의 마시산군인데, 신라 경덕왕이 이산(伊山)으로 고쳐서 군(郡)이 되었는데, 고려 헌종 9년에 운주에 딸리었다가, 그 후에 감무를 두었음은 사람이 적고 산물이 아주 적기 때문에 덕풍과 이산 두 고을을 병합하여 덕산으로 고치고, 같은 13년(1413)에 예에 의하여 현감이 되었다. 제24대 헌종 13년(1847)에 군이 되어, 장촌(場村) 대조지(大鳥旨), 대덕산(大德山), 나박소(羅朴所), 현내(縣內), 내야(內也), 외야(外也), 도용(道用), 고현내(古縣內), 고산(高山), 거등(居等), 비방곶(菲方串)의 12개면을 관할하였는데,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예산군에 편입되어, 현내, 나박소의 2면이 합하여 덕산면으로 대덕산, 대조지, 장촌의 3면이 합하여 삽교면으로, 도용, 고현내(일부), 거동, 고산의 4면이 합하여 고덕면으로 내야, 외야의 2면과 고현내면 일부를 합하여 봉산면으로 되고, 오가면과 신암면의 일부지역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