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예산군청
충남문화의 해

통합검색
인기 검색어

지명유래

마을유래

동쪽으로는 대술면(大述面)·신양면(新陽面)과 접하며, 남쪽으로는 신양면(新陽面)·광시면(光時面)과 접하고, 서쪽으로는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그리고 응봉면(應峯面)이 접하며, 북쪽으로는 오가면(五可面)과 예산읍이 접한다. 1924년 행정구역 개편때에 근동면(近東面)의 금곡(金谷)외 19개동리(洞里)와 예산군(禮山郡) 군내면(郡內面)의 탄부동(炭釜洞)을 병합하고, 대흥군(大興郡)의 이름을 따서 대흥군(大興郡)이라 하고 예산군에 편입되었다.

상중리(上中里)

본래 대흥군 읍 내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리와 중리를 병합하여 상중리라 해서 예산군 대흥면에 편입되었다.
기반교[골말 끝에 있는 다리로 ′나천석교′라고도 하며, ′가반′이라는 아귀할머니가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내천′에 돌로 다리를 놓았었으나, 현재는 예당저수지에 묻힘], 가반이들[가반교가 있는 들로서 현재는 저수지에 매몰됨], 간마뭇굴[상중리에 있는 마을로 감나무가 많았음], 경결냉천터[정결이들에 있는 냉천(冷泉)의 터], 경결이들[상중리와 동서리에 걸쳐 있는 들로서 경결천가에 있음], 골말[상중리에서 가장 큰 마을], 난내들[불당골과 발록재 사이에 있는 들로서 난내가에 있음], 낡은사작[상리 서쪽,봉수산 밑에 있는터로 ′사직단터′라고도 하며, 이곳에 대흥군의 사직단이 있었는데, 교촌리로 옮겼음],대흥암(大興庵)[불당공에 있는 대흥암의 터],도문허리[상리 서쪽의 옛 ′임존성′ 동문의 터], 뒷들[상리 뒤에 있는 들], 묘순이바위[상리 서쪽 임존성(도, 산천) 밖에 있는 바위로 ′묘순이 바위′라고도 하며, 옛날묘순이라는 힘센 처녀가 쌓았다고 함], 발록재[상중리에 있는 등성이로 ′발록티′라고도하며, 전에 이곳이 연병장이어서 녹을 나누어 주었다 함], 발록포강[발록재 밑에 있는 못], 범둥굴[상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산이 엄해서 범이 뒹굴었다 함], 벼락바위[상리 서쪽, 봉수산(도, 산천)에 있는 바위], 불당(佛堂)골[상중리에 잇는 마을로 불당이 잇엇다고 함], 빗독거리[골말결에 있는 마을로 ′빗돌거리′라고도 하며, 비석이 많이 있음], 상당터[달기봉에 있는 터로 사직단이 있었으나, 교촌리로 옮겨갔음], 상리(上里)[상중리에 으뜸되는 마을], 상여바위[상리 서쪽, 임존성 안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상여 같다하여 붙여짐], 새절골[상리 서쪽 봉수산 밑에 있는 골짜기로 새로 절을 지었다 하여 붙여짐], 아랫용바위[달기봉에 있는 바위로 이곳에 기우제를 지냈음], 안산굴[당당터 밑에 있는굴], 연방장[발록재에 있는굴], 오리나무밑[발록재와 불당골 사이에 있는 논이었으나, 현재 저수지에 매몰되었음], 옥담거리[상중리에 있는 마을로 대흥군의 옥(獄)이 있었음], 옷밭거리[상중리에 있는 마을로 ′칠전거리′라고도하며, 옻나무 밭이 있었다 함], 윗용바위[아랫용바위 위에 있는 바위로 이곳에서천재를 지냈음], 중당(中堂)[상중리에 있는 마을], 중당보(中堂洑)[중당 앞에 있는 보로 ′뒷들보′라고도 하며, 뒷들에서 이용함], 큰골[상리 서쪽 봉수산 밑에 있는 큰 골짜기], 큰샘터[상중리에 있는 큰 셈이 있다는 곳], 토성터[발록재에 있는 터로 대흥읍성이 있었다고함] 등이 있다.

동서리(東西里)

본래 대흥군 읍내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동북리와 서북리를 병합하여 동서리라 해서 예산군 대흥면에 편입되었다.
객사(客舍)터[동서리에 있는 조선 때 대흥군의 객사터로 1911년에 대흥보통(국민)학교가 새워진곳], 견사정(見思亭)터[객사 동쪽에 있는 정자터로 원래는 ′포정정(布政亭)′이라 하엿는데, 관찰사 안침(安琛)이 고쳤다고 함], 냉전들[참샘이 있는 들], 대흥교(大興橋)[동서리에 있는 다리], 동북리(東北里)[동서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동산[동북리 서쪽에 있는 산], 동서교(東西橋)[동서리에 잇는 다리], 문루(門樓)터[조선때 대흥읍성의 문루터], 비티[동서리, 교촌리, 응봉면 사이에 있는 고개로 ′비티서낭′과 비티폭포가 있음], 빙고제(빙고티)[도산에 있는 고개로 ′빙고티′라고도 하며, 조선때 빙고가 있었다고함], 사정(射亭)터[동서리에 있는 사정의 터], 사직(社稷)골[동서리에 잇는 마을로 조선때 대흥군의 사직단이 있었음], 사록들[동북리에 있는 시장 근처 마을로 ′장거리′라고도 함], 참샘밑[참샘 밑에 있는 논], 창터밑[읍창터 밑에 있는 들], 하마대(下馬臺)[안거리에 있는 하마대의 터]등이 있다.

교촌리(校村里)

본래 대흥군 읍내면의 지역으로서 향교(鄕校)가 있으므로 향교말, 또는 교촌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소천리, 상우정리, 중우정리, 소현리, 도접리를 병합하여 교촌리라 해서 예산군 대흥면에 편입되었다.
강골[향교말에 딸려 있는 마을], 교촌(郊村)[′교촌리, 향교말′이라고도 함], 구두물[도접이에 딸린 마을로 큰 우물이 있었음], 도접이[소우물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도접리′라고도 함], 베틀바위[교촌에 있는 바위로 베틀처럼 생겨서 붙여짐], 병목안[교촌리에 있는 골짜기로 모양이 병목처럼 생겨서 붙여짐], 사직단(社稷壇)터[소천에 있는 조선때 대흥현의 사직단 터], 산악골[향교말에 딸린 마을로 ′선학동′이라고도 함], 상우정[우정 위쪽에 있는 마을], 소우물[향교말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우정(牛井)′이라고도 하며, 큰 우물이 있어서 붙여짐], 소천(召泉)[향교말에 달린 마을], 솔고개[솔고개 밑에 있는 마을로 ′송현(松峴)′이라고도 함], 솔고개[우정 서북쪽에 있는 고개로 소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여짐], 여단터[선학골 위에 있는 마을로 조선 대 여단이 있었다고 함], 원댕이[교촌리에 있는 마을로 전에 원당(願堂)이 있었다고 함], 중우정(中牛井)[소우물 중앙에 있는 마을], 홍살문터[대흥향교 앞에 있는 홍살문의 터], 홍자제(洪字堤)[교촌리에 있는 연못]등이 있다.

송지리(松池里)

본래 대흥군 근동면의 지역으로서 큰 못(소)이 있었으므로 송지못, 송지연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도덕등을 병합하여 송지리라 해서 예산군 대흥면에 편입되었다.
관양굴[송지못 동쪽에 있는 마을], 도덕골[송지못 동쪽에 있는 마을로 ′도덕동(道德洞)′이라고도 함], 동구봉[송지못 북쪽에 있는 마을], 못뿌리[송지못 남쪽에 있는 부리로 ′송지연못부리′라고도 함], 송지못[송지못 마을 남쪽에 있는 못으로 ′송지연(宋池淵)′이라고도 하며, 옛날에 송(宋) 도령이 소나무 가지에 올라 앉아 책을읽다가 바람에 책이 날려 못으로 떨러지게 되자 그책을 잡으려다 못에 빠져 죽었다 하여 붙여짐], 자리꼍[송지못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매몰된 자리에 새로 생겼다함]등이 있다.

대야리(大也里)

본래 대흥군 근동면의 지역으로서 대앗골, 댓골, 또는 대아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내대야리, 외대야리를 병합하여 대야리라 해서 예산군 대흥면에 편입되었다.
군관문[냉천 동쪽에 있는 약수터], 대아동(大雅洞)[마을로 ′대야리, 대앗골, 댓골′이라고도 함], 대야리공동묘지(大也里共同墓地)[댓골 뒤쪽에 있는 공동묘지], 돌꼬지모탱이[밧댓골 북쪽에 있는 모롱이로 돌이 곶을 이루었음], 반석골[대야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 밧댓골[댓골 바깥쪽에 있는 마을], 부엉바위[군관문 옆에 있는 바위로 부엉이가 살았다고 함], 안댓골[댓골 안쪽에 있는 마을], 절골[댓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절이 있었다고 함], 창들[댓골 서북쪽에 있는 들로 ′창평(蒼坪)′이라고도 하며, 창고가 있었다고 함], 창평보[창들에 있는 보], 하탄고개[댓골 동북쪽에 있는 고개로 탄방리 하탄으로 넘어감]등이 있다.

신속리(薪束里)

본래 대흥군 근동면의 지역으로서 섶뭇이 많이 있으므로 섶무시, 또는 신속리아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산직리를 병합하여 신속리라 해서 예산군 대흥면에 편입되었다.
댓골고개[섶무시 남쪽에 있는 고개로 대야리 댓고로 넘어감], 섶무시[마을로 ′신속리, 신속′이라고도 함], 숫뱅이고개[섶무시 동남쪽에 있는 고개, 탄방리 숫뱅이로 넘어감], 잿말[넘어말, 산직리]< 마을> 섶무시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너머말, 산직리′라고도 하며, ① 토성 밑이 되고, 섶무시에서 산 너머쪽이 되며, 산직이 집이 있었으므로 붙여짐], 창들[섶무시 서쪽에 있는 들로 창고가 있었다고 함], 토성터[잿말 뒤에 있는 토성의 터]등이 있다.

노동리(蘆洞里)

본래 대흥군 근동면의 지역으로서 갈풀이 많이 있으므로 갈울, 또는 노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기곡리를 병합하여 노동리라 해서 예산군 대흥면에 편입되었다.
갈울[마을로 ′노동, 노동리′라고도 함], 동갈울[갈울 동쪽에 잇는 마을로 노동리에서 가장 큼], 딴산[딴산 동쪽에 있는 마을], 딴산[동강루 서쪽, 무한천 가운데 외따로 있는 산으로 예당저수지의 뚝이 이 산에 의지하여 이루어졌음], 딴산수문[딴산에 연결되어 있는 예당저수지의 수문], 무한언(無限堰)[딴산에 연결되어 있는 예당저수지의 뚝으로 무한천을 가로막았음], 양첨미[텃거리 남쪽에 있는 마을], 지룰고개[동갈울 동북쪽에 잇는 고개], 텃거리[갈울 남쪽에 있는 마을로 ′기곡, 텃골′이리고도 함]등이 있다.

탄방리(炭防里)

본래 대흥군 근동면의 지역으로서 숯집이 있었으므로 숯뱅이 또는 탄방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류동, 상탄방리, 중탄방리를 병합하여 탄방리라 해서 예산군 대흥면에 편입되었다.
고류동(古柳洞)[숯뱅이 동쪽에 있는 마을로 늙은 버드나무가 많았다 함], 고련밭[고류동 남쪽에 있는 밭], 독쟁이[중숯뱅이 서쪽에 있는 골짜기], 두리봉[고류동 동쪽에 있는 산으로 모양이 둥글어서 붙여짐], 두리봉모탱이[두리봉 밑에 있는 모랭이], 만주뜸[고류동 북쪽에 있는 마을], 말미산[윗숯뱅이 서쪽에 있는 산으로 말처럼 생겼다 함], 복골[윗숯뱅이 남쪽에 있는 골짜기], 숫둘봉[중숯뱅이 서쪽에 있는 산으로 숫돌이 났다 하여 붙여짐], 아래숯뱅이[숯배이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하탄방, 하타′이라고도 함], 언고개[윗숯뱅이 동쪽에 있는 고개], 윗숯뱅이[숯뱅이 윗쪽에 있는 마을로 ′상탄방′이라고도 함], 유리기[하탄방 서북쪽에 있는 마을], 작은 독쟁이[독쟁이의 작은 골짜기], 중숯쟁이[숯뱅이 중간에 있는 마을로 ′중탄방′이라고도 함], 지룰고개[지곡리의 ′지룰고개′와 같음], 큰독쟁이[독쟁이의 큰 골짜기], 탄방(炭坊)[마을로 ′탄방리, 숯뱅이′라고도 함], 훗곳골[ 윗숯뱅이의 북쪽에 있는 골짜기], 황세봉[고류동 동남쪽에 있는 산]등이 있다.

금곡리(金谷里)

본래 대흥군 근동면의 지역으로서 금이 많이 나므로 쇠울로 변하여 세울, 세오리, 도는 금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기곡리를 병합하여 금곡리라 해서 예산군 대흥면에 편입되었다.
쇠-울[마을로 ′금곡리(金谷里), 금곡, 세오리, 세울′이라고도 함], 해남재[해남재 고개 밑에 있는 마을], 해남재[금곡리에 있는 고개]등이 있다

지곡리(芝谷里)

본래 대흥군 근동면의 지역으로서 산이 사방으로 애워 싼 골짜기가 되므로 지룰, 또는 지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지곡리라 해서 예산군 대흥면 편입되었다.
달걀봉[윗고라실 서쪽에 있는 산으로 달걀처럼 생겼으므로 붙여짐], 도댕이[달걀봉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도당(都堂)의 터], 도랑글[지룰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도란굴′이라고도 함], 서낭산[양그뜸 서쪽에 있는 산으로 서낭당이 있었음], 속뜸[양그뜸과 도랑굴 사이에 있는 마을], 수박구대기[큰뜸 동쪽에 있는 산], 아래고라실[윗고라실 아래쪽에 있는 들], 안산(案山)[지룰 앞에 있는 산], 안산밭[안산 밑에 있는 밭], 양그뜸[지곡리 중앙에 있는 마을], 옷밧거리[속뜸 안에 있는 길], 우렁배[아래고라실 남쪽에 있는 논으로 우렁이 많아서 붙여짐], 윗고라실[지룰 위쪽에 있는 들], 음골[도란굴 남쪽에 있는 응달진 골짜기], 작은고개[지룰 서쪽에 있는 고개로 대흥으로 통합], 젓골[지룰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그너머 노동리에 절이 있음], 중정바위[젓골에 있는 큰 바위], 지곡(芝谷)[마을로 ′지룰, 지곡리′라고도함], 지룰고개[지룰에서 노동리에 동갈울로 넘어가는 고개], 쪽다리[큰뜸, 속뜸 사이에 있는 다리], 큰고개[지룰 북쪽에 있는 큰고개로 예산읍으로 통합], 큰뜸[지룰 동쪽에 있는 큰 마을], 핀듯굴[큰뜸 남쪽에 있는 골짜기], 함절몰[지룰에서 탄방리로 가는 모롱이]등이 있다.

대률리(大栗里)

본래 대흥군 근동면의 지역으로서 바미, 또는 율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상송림리, 하송림리를 병합하여 대율리라 해서 예산군 대흥면에 편입 되었다.
바미[마을로 ′대율리, 율리′라고도 함], 바미모탱이[윗바미 북쪽에 있는 모롱이], 방새논[석숫골에 있는 논], 석숫골[윗바미 북쪽에 있는 골짜기], 섬배미[바미에 있는 논으로 가운데 섬이 있었기에 붙여짐], 송림[대율리에 있는 마을], 쇠울고개[바미에서 금곡리의 쇠울로 넘어가는 고개], 수렁자리[섬배미 서쪽에 있는 논으로수렁이 있어서 붙여짐], 아래송림[송림 아래쪽에 있는 마을], 아랫바미[바미 아래쪽에 있는 마을], 연화봉(蓮花峯)[위바미 남쪽에 있는 산으로 모양이 연꽃같아서 붙여짐], 우렁골[윗바미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모양이 우렁과 같이 하여 붙여짐], 윗바미[바미 윗쪽에 있는 마을], 윗송림[송림 위쪽에 있는 마을], 중송림[송림 중앙에 있는 마을], 참샘[위바미 남쪽 골짜기에 잇는 샘으로 물이 매우 차서 붙여짐], 참샘골[참샘이 있는 골짜기]등이 있다.

갈신리(葛申里)

본래 대흥군 근동지면의 지역으로서 갈신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갈신리, 하갈신리를 병합하여 갈신리라 해서 예산군 대흥면에 편입됨.
갈신(葛申)[마을로 ′갈신리′라고도 함], 고상말랭이[큰뜸 남쪽에 있는 산], 구렛들[큰뜸동남쪽에 있는 들], 덕골[큰뜸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덕곡(德谷)′이라고도 함], 뒷골안[상갈신 뒤,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 벚나무고개[형제고개에서 동쪽 신양으로 가는 고개로 벗나무가 있었다고 함], 부엉재[큰뜸 북쪽에 있는 산으로 부엉이가 살았다 함], 불당골[큰뜸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불당이 있었다 함], 사위논[큰뜸 남서쪽에 있는 논으로 사위 몫으로 샀다 하여 붙여짐], 삼박골[하갈신 동쪽에 있는 마을로 ′단장골′이라고도함], 새암골[하갈신 서쪽에 있는 마을로 ′샘골′이라고도 하며, 큰 샘이 있어서 붙여짐], 샘배미[큰뜸 동남쪽에 있는 논으로 샘이 있어서 붙여짐], 소쟁이들[큰뜸 동쪽에 있는들], 솔안말[상갈신 동쪽에 있는 마을로 ′안말′이라고도 하며, 소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여짐], 수랑자리[큰뜸 남쪽에 있는 논으로 수렁이 있어서 붙여짐], 아래갈신[갈신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하갈신′이라고도 함], 용수골[샘골 남서쪽에 있는 마을], 위갈신[갈신 위쪽에 있는 마을로 ′하갈신′이라고도 함], 용수골[샘골 남서쪽에 있는 마을], 위갈신[갈신 위쪽에 있는 마을로 ′상갈신(上葛申)′이라고도 함], 장구논[큰뜸 동남쪽에 있는 논으로 장구처럼 생겼으므로 붙여짐], 절골[큰뜸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절이 있었으므로 붙여짐], 주막거리[상갈신 앞에 있는 마을로 주막이 있었다고 함], 충창골[큰뜸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창고가 있었으므로 붙여짐], 큰뜸[갈신리에서 가장 큰 마을], 풀새기들[큰뜸 남쪽에 있는 들], 하지기들[도쟁이들 동쪽에 있는 들], 형제고개[큰뜸 북쪽에 있는 고개로 ′형제티(兄弟峙′라고도 하며, 고개가 연이어 둘이어서 붙여짐]등이 있다

손지리(遜支里)

본래 대흥군 근동면의 지역으로서 손짓골, 손죽골, 또는 손지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죽림리와 예산군 군내면의 탄부동을 병합하여 손지리라 해서 예산군 대흥면에 편입되었다.
감나뭇골[대숲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감나무가 있었다고 함], 괴염나무골[대숲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고욤나무가 있었다고 함], 구억말[대숲골 남쪽에 있는 마을], 구정벼루[손죽골 북쪽에 있는 벼랑으로 ′벼룩불′이라고도 하며, 무안천이 소를 이루고 흘러서 매우 험함], 닥채발굴[대숲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닥채나무(닥나무)가 있었다 함], 대숲골[손죽골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죽림리(竹林里)′라고도 하며, 대나무가 많았다고 함], 도덕골[대숲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도둑이 많았었다 함], 마상고개[손죽골 북쪽에 있는 고개로 예산군 주교리의 마산골로 넘어감], 매방재[대숲골 남쪽에 있는산], 방자림터[대숲골 동쪽에 있는 들], 불당골[대숲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불상이 있었다고 함], 사태말[손죽골 북쪽에 새로 된 마을], 소시랑들[손죽골 서북쪽에 있는 들], 손죽골[마을로 ′손지리, 손지동, 손짓골′이라고도 함], 손지교[손죽골 서쪽, 무한천에 걸쳐 있는 다리], 송림고개[손죽골 동남쪽에 있는 고개로 대율리 송림으로 넘어감], 아래뜸[대숲골 아래쪽에 있는 마을], 아래주막거리[손죽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주막이 있었다고함], 안마을[손죽골 안쪽에 있는 마을], 위뜸[대숲골 위쪽에 있는 마을], 윗주막거리[아래주막거리 위쪽에 있는 마을], 일산봉[손죽골 동쪽에 있는 산으로 높고 뾰족하여 붙여짐], 작은골[손죽골 동남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 제이손지교[손지교 아래에 있는 다리], 중골[안말 동쪽에 있는 골짜기], 지룰고개[대숲골 동쪽에 있는 고개로 지곡리 지룰리로 넘어감], 지명곡(池明谷)[대숲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진밭굴[대숲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긴밭이 있어서 붙여짐], 짚은들[대숲골 서북쪽에 있는 들로 땅이 깊어서 물이 흔함], 참샘굴[참생이 있는 골짜기], 텃굴[손죽굴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큰골[손죽굴 동북쪽에 있는 큰골짜기], 해상골[안말 동쪽에 있는 골짜기], 황새방굴[대숲골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황새가 많이 서식하여 붙여진 이름]등이 있다.